토마스 트란스트뢰뫼르의 시집 <기억이 나를 본다> ..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에 대한 기사를 읽고 찾아읽게된 시집인데, 첨엔 학교서 빌려봤다가 자꾸 생각나고, 떠올라서 시집을 사서 아끼며 보고 있다.
70세가 넘은 노시인이지만 발표하는 시의 분량이 많은 작가는 아니어서 <기억이 나를 본다>란 시집엔 그가 뽑은 대표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정수(淨水)들이다.
근래에 자주읽게 된 시 몇편을 실어본다.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
신문지 한 장이 몇 달째 누워있다. 사건을 가득담고.
빗속 핵빛 속에 밤이나 납이나 신문은 그곳에서 늙어간다.
식물이 되어가는 중이고, 배추 머리가 되어가는 중이고, 땅과 하나가 되어가는 중이다.
옛 기억이 서서히 당신 자신이 되듯.
<역사에 대하여> 中
학생이 밤중에 책을 읽는다.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읽고 또 읽는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은 다음 사람을 위한 계단이 된다.
힘든길.
도달한 자는 먼길을 가야만 한다.
-<아프리카의일기 중> 中
사월과 침묵
봄이 버림받아 누어있다.
검보랏빛 도랑이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내 옆에서 기어간다.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몇 송이 노란 꽃
나는 검은 케이스 속의
바이올린처럼
매 그림자 속에 담겨 운반된다.
하고싶은 유일한 말은
닿을 수 없는 것에서 반짝인다.
전당포 안의
은그릇처럼.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당시 뇌졸증으로 지금은 말을 할 수 없게된 그를 대신해서 그의 아내가 그의 작품 <1979년 3월에>를 읊으며 답사를 대신했다.
<1979년 3월에>
말도, 언어도 없고 말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지겨워
눈 덮인 섬을 향한다.
야성은 말이 없다.
쓰여지지 않는 페이지들이 사방팔방 펼쳐져 있다.
눈 속에 순록의 발자국을 만난다.
언어, 말없는 언어
From March 1979
Weary of all who come with words, words but no language.
I make my way to the snow-covered island.
The untamed has no words.
The unwritten pages spread out on every side!
I come upon the tracks of deer's hooves in the snow.
Language but no words
그의 답변 시는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또다른 경종을울린다.
출처: <기억이 나를 본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뫼르, 이경수 역,들녘,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