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순간 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거나 속이 들여다 보이는 뻔한 인사치레를 제외하면,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24시간 생중계도 마다하지 않는 사회 속에 살며 함께 썪어 가는 중이다.
그렇게 사람을 쓰레기에 빗대어 말하면서 타인은 조심하고 경계해야 해야하는, 믿을 수 없는 피해야할 존재로 몰아세우며 고독을 정당화 한다.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말처럼 차인은 지옥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고독한 나에게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과 사람들 속에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비록 그 빛이 바래어 더 이상 찬란히 빛나는 존재는 아니어도 당신의 아름다움이 나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길 바래본다.
2015. 7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 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뿐이다.
-아담 자가예프스키『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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