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최상으로 꼽는 문학은 시(詩)지만 불행히도 내겐 시를 쓰는 능력이 없다. 작업하며 막힐때 긁적거리며 써내려간 이야기들로 어느덧 4~5권의 책을 내고 있지만 나의 글들은 하나같이 그냥 나같다.
작품도 작가들을 닮는 것 처럼 글도 그 사람을 닮은 것일까.
오랜만에 꺼내 본 피천득님의 '인연'은 읽을 때 마다 '아,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한 사람이었지.'를 깨닫게 하면서 동시에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나를 꽤 맘에 들게 한다.
너무나 사소하고, 익숙해서 미쳐 몰랐던 순간의 의미들...
딸 서영이를 향한 한 아버지의 사랑과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 남긴 편지는 나의 아버지를 그립게 했다. 물론 살아계셨다해도 이런 말들을 들어볼 순 없었을 꺼다.
그의 담담한 글을 읽어나가면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진다.
"수필은 씌여지는 것이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내가 왜 작품을 앞에두고 고민이 많았는지 알겠다.
개인전을 마치고 아직까지 어지럼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물론 스트레스를 줄여야 할테지만 무언가 억지로 하려고 애를 쓸 수록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내 작품들은 수필과 같은 것들이다.
그 안에 내가 해당되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억지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특별한 사건도,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도 없다.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불안해하고 , 힘들어하고, 기뻐하던 것들이다.
그냥 자연스럼게 오늘을 충실히 살다보면 불연듯 떠오르는 풍경과 호기심들이었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목표로 한다는 연출은 영화의 묘사된 장면이 전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란다.
뭔가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고 감정을 짜내고 특별함만을 추구하는 요즘,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는게 그의 바람이다.
뭔가 내가 들어가 있지 않은 보이기 위한 것들은 집어치워야겠다.
그동안 너무 나를 다듬어 온 것 같다.
풀어주다 보면 편히 잘 날도 올테지.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